posted by Madein 2007. 8. 20. 17:15
 

【서울=뉴시스】

‘디워’는 근래 들어 가장 소모적이고 무의미한 논란을 남겼다.

이런 논란이 일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픈 시점도 곧 올 것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는 있다. 대중만족도의 문제가 그것이다.

물론 비평계의 대중만족도 예견과 실제 대중 반응이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디워’에서 만큼 극명하게 동떨어지지도 않는다.

이는 각종 논리를 다 동원해도 속 시원히 설명되지 않는다. 애국심 논리, 계급갈등 조장 논리도 한계가 있다. 인터넷으로 바라본 대중은 실제로 ‘디워’를 긍정적으로 여기는 듯 보인다.



이 특이한 현상은 인문학이나 대중심리학을 들이대 파악될 일이 아니다. 보다 건조한 상품이론을 접목시켜봐야 한다. 그 중에서도 신상품 시장반응에 있어 얼리 어답터 기능이 마비되는 상황을 접목시켜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특정 사회현상 및 이변 탓에 일반대중이 얼리어답터보다 먼저 신상품을 소비하게 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를 영화 시장으로 돌려놓고 생각해보자.

현재 한국 영화시장의 고정 관객층은 500만명 선으로 파악된다. 일반적으로 영화가 대표적 엔터테인먼트로 자리 잡은, 개발도상국 이상 경제 규모를 지닌 국가의 고정 관객층은 인구의 10분의 1 수준이다. 미국은 2500만명 선, 일본은 1500만명 선이다. 인도는 이보다 더 나아가지만, 세계에서 비슷한 예를 찾아보기 힘든 특이 케이스다.

한국 시장의 영화 흥행은 이 500만의 고정 관객층 내에서 80?90% 소화된다. 중박은 이들 중 3분의 1, 대박급은 3분 2가 극장을 찾는다는 식이다. 그 이상으로 가는 영화는, 사회 이슈화를 이뤘거나 비고정 관객층의 대표격인 ‘어린이 관객’을 불러들일 수 있었던 아이템이다. 그러나 사회 이슈화도 일단 고정 관객층에게서 반향을 일으켜야 가능해지고, 어린이용 영화 역시 고정 관객층까지 소화 가능한 아이템만이 대형 배급에 들어간다. 이들은 영화산업의 바탕이다.

고정 관객층은 사실 다루기 힘든 계층이다. 영화 관람이 일상화 되었을 뿐더러, 그만큼 각종 콘텐츠에 익숙해진 계층이다. 영화에 대한 입맛이 까다롭고, 특출난 아이템이 아니라면 콘텐츠 만족도가 그리 높지 않다. 이들은 일종의 ‘준전문가’에 속한다. 때로는 전문가 이상의 견해를 피력하기도 한다. 상품시장에서의 얼리어답터 기능과 매우 흡사하다.

일반적으로 영화의 개봉 첫주와 둘째주까지는 고정관객층 내에서만 영화소비가 이루어진다. 따라서 이들이 초반 대중반응을 대변한다. 이후 대박급으로 확장돼 목소리 폭이 넓어져도 이들의 반응은 여전히 지배적이다. 대중반응 전체를 대변하게 된다. 미디어는 영화에 대해 개봉 초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따라서 미디어가 내보내는 대중 반응은 초반 반응 외엔 없다. 또한, 추가된 비고정 관객층 의견이라 해서 초반 반응과 다르지만도 않다. 비고정 관객층은, 선거로 치자면 일종의 부동층이다. 선발 반응에 영향을 받기 쉽다. 애초 영화 장르에 크게 관심 있는 이들이 아니다.

영화 비평이 이들 고정 관객층에 맞춰지는 것도 당연하다. 실질적 소비계층에 맞추는 것이 정석이기 때문이다. 고정 관객층 반응이 곧 ‘대중 반응’이 되고, 비평도 이들에게 맞춰지기에, 비평과 대중 간의 관계는 지금껏 큰 갈등 없이 유지될 수 있었다. 비평은 본래 기능인 대중만족도 예견, 대중의 감상 폭 확장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었다.

‘디워’ 논란은 바로 이 오래된 이해관계가 무너진 데 기인한다. 대중 반응 전체를 대변하던 고정 관객층이 초반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그 외 계층, 비고정 관객층이 ‘때 이르게’ 엄청난 숫자로 극장에 도달해 저변 반응을 차지했다. ‘디워’ 첫주 흥행이 이것을 대변해준다. 첫주 300만 관객 동원은 거의 불가능한 수치다. 고정관객층 동원 논리로는 설명 자체가 불가능하다. 다양한 취향과 고집이 있고, 영화의 평균적 극장 공개일자와 관람 편의 상황에 대해 감각을 갖춘 고정관객층은 첫주에 한 영화로 몰려들기 힘들다. ‘디워’의 첫 주 300만 관객동원은, 특수상황에 의해 관객동원 ‘순서’가 뒤바뀌었다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뒤바뀐 순서의 요인은 크게 두 가지로 파악된다. 먼저 영화 홍보 툴이 닿지 않는 곳에서의 심형래 분전이 있다. 고정 관객층은 영화의 일상적 홍보 툴, 즉 영화 소개 프로그램이나 연예 오락 프로그램, 인터넷 광고 등에 쉽게 노출되고 반응하는 계층이다. 그러나 심형래와 ‘디워’는 ‘인물론’을 일으켜 기존 영화 홍보 과정에서 등장하기 힘든 프로그램에까지 노출됐다. 일상적 홍보 툴에서도 심형래는 일반 연예인들에 비해 강한 효과를 발휘했다. 대중 정서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자극했다. 일상적 툴에 좀처럼 반응하지 않는 대중까지 끌어냈다.

또한, 영화 개봉 이전부터 노이즈 마케팅이 시작됐다. 이는 우연에 가깝다. 적어도 홍보사 측에서 의도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심형래 개인 팬층이 열성적으로 비평가들의 ‘디워’ 혹평과 비관적 전망에 배싱을 퍼부었다. 이것이 심화되자, ‘디워’는 모든 사회적 대의 마케팅이 꿈꾸는 ‘개봉 전 사회 이슈화’에 성공했다. 때 이른 사회 이슈화는 최종 관람층을 최초로 옮겨놓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여기서부터는 비평계가 예견해내던 대중만족도가 틀어지게 된다. 비고정 관객층은 상대적으로 콘텐츠 만족도가 높다. 극장관람 자체를 이벤트로서 즐기는 성향이 강하다. 더군다나 사회이슈화로 끌어당겨진 관객층은 콘텐츠 내외적 감흥을 혼합해 관람을 즐긴다. 고정 관객층, 즉 극장관람이 일상적이고, 기본적으로 콘텐츠에 비판적 태도를 보이며, 홍보요소와 콘텐츠를 철저히 구분하는 이들에게 맞춰졌던 비평 시각은 지지를 잃는다.

또한, 애초 고정 관객층이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든 상황도 존재했다. 반대의견에 열렬히 배싱을 가한 ‘디워’-심형래 열성팬 역할이 크다. 고정 관객층은 영화를 ‘이슈’로서 즐기는 계층이 아니라 ‘관람’ 자체를 즐기는 계층이다. 자기 의견은 아끼지 않지만, 치열한 논박을 즐기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인터넷 폭력 상황 속에선 아예 나서길 꺼려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디워’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대세 여론을 잡을 수 있었다. 결국 ‘시간차’의 문제였다. 공개 전에 하이프가 아닌 버즈가 먼저 나왔고, 뒤늦게 도착하던 계층이 가장 먼저 도착해 버렸다. 그리고 폭력의 문제도 있다. 대단한 의지나 뜻이라도 있는 것이 아닌 이상, 영화 한 편 때문에 욕먹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결과는, ‘모두 다 좋다는데 비평가만 싫다 한다’로 귀착된다.

이런 점에서 ‘디워’의 대중 대 비평계 갈등은 궁극적으로 미디어의 자각을 요구한다. ‘대중반응’을 대체 무엇으로 판단하며, 어느 계층을 중심으로 평가해야 하는지 말이다. 대중은 말 그대로 ‘한국 전체 인구’인가, 아니면 영화를 고정적으로 관람하는 실효적 소비계층인가. 또한, 인터넷 반응을 대중 반응으로 직접 대입하는 태도에 문제는 없나. ‘대세’에 반발하는 대중이 자기 의견을 피력하기 힘든 인터넷 폭력 상황이 펼쳐지고 있을 때마저도 그런가. 적어도 미디어는 이런 화두에 따른 대안적 기준을 시급히 제시해야만 한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l.com

출처 : Tong - 나보다못한사람은없다님의 시원한 뉴스통